세미한교회가 지난 3월 20일부터 29일까지 크리스천 구호단체 월드비전(World Vision)과 함께 이디오피아 현장비전트립을 다녀왔다. 최근 120여명의 이디오피아 오모나다 지역 어린이를 후원하게 된 교회로서 이 지역을 직접 탐방해 그들의 필요를 알고 사역의 방향을 보다 구체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세미한교회의 최병락 목사는 이디오피아 지역의 구제사역에 더 많은 지역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동참하길 바라며 이번 여행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경험담을 몇회에 걸쳐 생생하게 전해줄 예정이다.<편집자주>

아프리카! 그것도 난민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GDP 183달러의 가난한 나라, 이디오피아를 두발로 밟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것도 이렇게 일찍. 최근 <사막의 새벽> <집으로 가는 길> <블러드 다이아몬드> 등의 아프리카에 대한 책을 접하게 되면서 아프리카 문제에 깊은 관심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 관심의 속도만큼이나 빨리 그 기회가 찾아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크리스챤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을 통해서 우리교회가 돕고 있는 이디오피아의 오모나다 지역을 직접 방문하게 된 것이다. 우리교회는 지난 1월달에 월드비전을 통해서 이디오피아 오모나다 지역에 사는 어린아이 127명을 결연하고 돕고 있다. 그런데 마침 월드비전에서 일년에 한번있는 현장비전트립 지역이 우리가 돕고 있는 오모나다 지역과 일치하기에 여장을 꾸려 따라나선것이다.
출발하기도 전에 이디오피아에는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AIDS에 감염이 되어있다느니, 마약중독자들이 많아서 위험하다는 반갑지 않은 이야기들이 묻지 않아도 친절하게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일찌감치 Travel nurse를 통해서 황혈병 접종과 파상풍 예방접종을하고, 한달치 말라리아 약도 받아놓은 상태였다.
이디오피아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달라스에서 네들란드 암스테르담까지 10시간 이상의 비행을 하고, 그곳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수단까지 약 7시간, 그곳에서 다시 2시간 반을 날아 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디오피아 공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것은 어두운 조명이었다. 이미 자정이 다 되어가는 밤에 공항에 켜진 조명들은 너무도 어두웠다. 아마 전력 공급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이디오피아의 현실을 그 조명들이 대변해 주는 듯 했다. 20달러를 받고 현장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이디오피아 화폐가치로 따지자면 220달러의 거금이었다.
비자를 받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하늘의 별들이 총총하고 어두운 조명에 도시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깊은 숨을 들이쉬니 오염되지 않은 공기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평균 해발고도가 2,000미터가 넘는 백두산 높이의 나라. 맨발의 아베베의 나라. 보통사람들보다 몇배는 발달된 심폐기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달리기 밖에는 달리 할 운동도 없어 보이는 나라.
우리를 마중나오기로 약속된 월드비전 현지 스텝이 나오질 않았다. 우리를 태우러 오기로 약속된 호텔의 셔틀버스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호텔을 찾아가기로 했다. 자기가 모시겠다며 우리 일행의 가방을 들고 앞서가는 현지 택시기사의 뒷모습에 오늘 봉잡았다는 으쓱함이 역력했다.

그런데 우리 앞에 당도한 택시는 과연 굴러갈까 눈을 의심케 하는, 차라리 밀고 가는 것이 낳을듯한 택시가 보무도 당당하게 옆구리를 벌리고 승차를 종용하고 있었다. 두 대에 나누어 탄 우리 일행 다섯은 그렇게 첫날밤 이디오피아 수도 아디스 아바바의 한밤을 가로질러 예약도 되어있지 않은 호텔을 불안한 마음으로 향했다.
수십년간의 공산주의의 잔재인지, 치안의 문제 때문인지는 몰라도 건물마다 경찰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고 우리가 도착한 호텔도 예외는 아니었다. 총을 찬 군인들이 차안을 면밀히 살핀 후 거수경례로 게이트를 열어주자 겨우 들어설 수 있었다.
이디오피아는 인구가 남북한 인구와 비슷한 7천 5백만명 정도이고, 언어는 약 80개가 통용되고 있으며, 공용어로는 암하리어와 영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었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는 인구 99%의 부를 거머쥔 1%의 부자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고, 나머지 국토에는 1%의 남은 부를 99%의 사람들이 나누어 먹고 연명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고급호텔이라고 하는 기혼호텔의 조명은 어릴적 5촉 다마의 위력(?)에 맞먹는 밝기로 이디오피아 사람들의 피부색깔 만큼이나 어둡게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이디오피아의 첫날밤은 그렇게 무심하게 깊어가고 있었다.